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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다 2018-03-03
편집국 choisejoon@onlykcs.com



요즘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가 대중화되면서 이 암호화폐의 첫 창시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이 궁금증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며 비트코인이 알려지기 시작한 2008년말부터 생기기 시작한 의문이었다. 초창기에는 논문의 이름에 나온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만으로 그가 일본사람이라고 추측했으나 이내 찾아내지 못함으로써 그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오늘은 그동안 전세계에서 밝히려고 노력했던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와 가장 근접한 후보를 추려내보고 그가 누구에 제일 가까운지 결론을 내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먼저 비트코인 논문에 나와있는 주소로 메일을 보내보며 이 여행을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사토시 나카모토'로부터 답변이 왔다. '불행히도 지금은 답변을 드릴 수 없겠네요. 내가 금방 답변드리도록 할게요. -사토시 나카모토-' 내 그럴 줄 알았다. 쉽게 나왔으면 전세계가 궁금해 하지 않았겠지. 자, 이제 사토시 나카모토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Dorian Satoshi Nakamoto)


인터넷 포털에서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입력하면 가장 먼저 뜨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말이 일본어이고 자연스럽게 일본인이 1순위로 비트코인 창시자의 후보로 올랐기 때문이다. 도리안 나카모토는 LA 근교에서 살고 있으며 처음에는 그냥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을 썼지만 지금은 도리안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3월 6일, 미국의 뉴스위크지에서 '비트코인의 얼굴'(The facce behind Bitcoin)이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당시 64세인 일본계 미국인 도리안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기사를 내 유명해진 인물이다. 이 사람의 직업도 시스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이의 행방을 취재했던 뉴스위크 기자는 두 달에 걸친 탐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토시를 추적했고, 급기야 도리안 집을 경찰과 함께 찾아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도리안은 당황하며 “더 이상 비트코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맡고 있다”고 대답해 이를 두고 기자는 도리안 자신이 비트코인의 창시자임을 고백했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쉽게 비트코인 창시자가 나오는 듯했으나 도리안 나카모토가 그 이후 '나는 절대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비트코인 창시자는 다시 암흑속에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한편 비트코인 코드를 만드는 일을 도왔다는 핀란드 프로그래머 마르티 말미는 자신의 트위터에 본인이 생각했던 모습과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인물이 많이 다른 것 같지 않다고 말해 더욱 혼란에 빠져버렸다. 추후 이 사람은 자신이 비트코인의 창시자라고 지목했던 뉴스위크지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


두번 째 인물로 호주의 암호학자인 크레이그 라이트가 비트코인의 창설자라는 설이다. 1970년생으로 호주출신 컴퓨터 과학자겸 사업가이다.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 교수로 핵물리학, 유기화학을 전공했다. 신학박사 학위도 취득한 바 있어 거의 천제 소리를 듣고 있는 인물이다.



사실 이 사람은 설이라기보다는 자신이 2016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커밍아웃한 사람이다. 크레이그 라이트는 비트코인에 관한 숱한 의혹을 풀기 위해 신분을 밝혔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 그가 주장할 당시엔 별다른 증거물을 제출하지 않아 믿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심 그럴 것 같다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비트코인 개발 초기에 만들어진 암호 키로 서명을 시연했고 관계자가 이를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반전이 생겼다. 이후 시연했던 최초의 개인키가 자신이라고 꼭 인증할 수는 없다고 사과문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한 것이다.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크레이그 라이트는 비트코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특허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그의 자산은 약 10조원에 이르고 비트코인을 100만 개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호주연방 경찰이 탈세혐의로 압수수색을 한 바 있다. 그는 현재 영국으로 도피해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50억달러(5조 3,650억원) 규모의 사상 최대 비트코인 소송에 휩싸였다. 크레이그 라이트에게 소송을 제기한 인물은 이라 클라인먼이라는 사람으로 크레이그 라이트가 자신에게 50억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클라인먼의 동생인 데이브는 IT 분야의 보안과 데이터 분야의 전문가로 비트코인 탄생과 상당한 관련이 있는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가 2013년 숨졌고 그의 형인 클라이먼은 동생이 생전에 비트코인과 관련하여 크레이그 라이트와 수많은 메일을 교환했으며, 동생이 숨지자 그의 비트코인과 특허를 크레이그 라이트가 훔쳤다고 주장했다. 클라인먼은 소송을 제기한 이날 현재 비트코인과 특허의 가치가 무려 51억 달러가 넘어간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그 메일 내용은?

클라이먼은 동생의 이메일을 뒤지다가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오기 수개월 전인 2008년 수신된 한 이메일에서 크레이그 라이트가 데이브에게 비트코인의 백서를 쓰는데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한 메일을 그 증거로 제출했다.


“친애하는 라이트 : 올해 말에 출범시킬 암호화폐 관련 백서를 편집하는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 화폐를 만들고 있는데 이 플젝트에 당신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암호화폐 창설의 일원이 되는 것을 원합니다.”


비트코인 재단의 수석 개발자들 역시 그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믿고 있어 여러 인물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할 피니(Hal Finney)


이 사람은 미국 포브스(Forbes)지가 추측성 기사를 내면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2014년 3월 25일에 발행된 포브스지의 내용을 보면 할 피니가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이유로 그가 비트코인의 최초 거래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2009년 1월 사토시 나카모토가 10코인을 할 피니에게 테스트용으로 보낸 것이 첫 거래였다. 이 거래로 할 피니는 비트코인을 최초로 이체받은 사람이 된 기록이 남겨져 있다.또한 최초 비트코인 논문을 전문기관에 의뢰해 분석해보았는데 서체와 글의 특성이 할 피니의 특성과 매우 많이 일치했다는 것을 증거로 대고 있다. 실제로 할 피니는 최초 지목자인 도리안 나카모토와 같은 동네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의 직업 역시 캘리포니아 공대 출신 뛰어난 암호학자이다.



다만 포브스지도 결정적으로 이 사람을 통해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포브스 기자가 할 피니의 집을 찾아갔을 때에는 할 피니가 루게릭(ALS) 병으로 전신이 마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기자는 할 피니 부인과의 통화에서 할 피니가 '자신은 비트코인 창시자와 접촉한 적은 있지만 자신이 만드는 데 관여하지는 않았다. 나는 사토시를 총명한 일본계 젊은이 정도로 생각했다'는 답변을 얻었으며 생전에 한 비트코인 커뮤니티에 '비트코인과 나'라는 편지를 남겼는데 거기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적혀있다. 참고로 할 피니는 2014년 8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음은 그가 남긴 편지의 일부 내용이다.


'처음으로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공개했을 때, 나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챘습니다. 아마 내가 사토시를 제외하곤 비트코인을 처음 구동해본 사람일 겁니다. 나는 70번 째 블록을 채굴했고 사토시가 처음으로 10코인을 보낸 첫 번째 수령자가 되었습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여기까지 왔다. 일론 머스크. 1971년생으로 영화 '아이언맨'의 제작 당시 토니 스타크 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캐릭터를 구상할 때 모티브로 삼았던 인물로 유명하다. 페이팔의 전신이 된 온라인 결제 서비스 회사 x.com에서 부터 시작하여 막대한 부를 거머쥔 일론 머스크는 이제 그의 부를 가지고 꿈꿨던 짓(?)을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Tesla) 모터스를 세우더니 이제는 우주 여객선 스페이스X를 세워 화성 이주를 현실화시키고 있다.



2015년 당시 이 스페이스X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한 사힐 굽타(Sahil Gupta)라는 사람이 2017년 11월 8일 한 블로그에서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 창시자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여기서 그는 일론 머스크가 암호학에 능통하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중앙 집중식 금융기관의 문제성을 해결하기 위해 중앙 기관이 필요 없는 새로운 화폐 개념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들은 일론 머스크는 즉시 '나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며 '몇 년전에 친구가 준 비트코인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해 관심이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이 주장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머스크라는 이름을 가지고 비트코인 사기 행각이 잦아지자 최근에 일론 머스크가 다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가 갖고 있는 비트코인은 0.25개이며 이것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못을 박았다.


찰리 리(Charlie Lee)


찰리 리는 모두가 알다시피 라이트코인의 창시자로, 얼마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라이트코인을 모두 팔았다'고 선언해 라이트코인 시세를 폭락시킨 주인공이다. 이 사람이 왜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의심을 받고 있느냐 하면, 비트코인이 생소했던 시기에 라이트코인이 등장했으므로 비트코인의 개발에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의해서이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2009년도에, 라이트코인은 2011년도에 출시되었다. 찰리 리는 세계 최대 암호 해독 회사인 코인베이스(Coinbase)의 직원 중 한명이었으며 처음 개발한 비트코인이 익명성을 근거로 부정한 목적으로 쓰이자 라이트코인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찰리 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비트코인 창시자가 절대로 아니다'며 해명을 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되었다.


닉 재보(Nick Szabo)


일부 사람들은 닉 재보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닉 재보는 분산화폐 전문가로 1998년 이미 '비트골드(Bit gold)'라는 분산화된 암호화폐를 고안한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라는 어휘도 닉 재보가 199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래한 것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암호학의 발달과 네트워크의 확장으로 사람의 개입 없이 실행되는 스마트 컨트랙트 세상이 펼쳐진다고 예상한 적이 있다. 더욱이 그가 1990년대 가명을 사용해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심에 확증을 더해주고 있다. 물론 닉 재보는 자신에게 향한 의심을 공개적으로 극구 부인하는 상황이다.



모치즈키 신이치


지난 2013년 5월,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테드 넬슨이 비트코인 창시자로 지목한 사람이다. 테드 넬슨은 이를 사회학적인 분석으로 가설을 세우고 유력한 후보를 경제학이나 수학계에서 찾았다. 결국 수리해석 분야에서 일본학술진흥회의 학술장려상 초대 수상자이기도 한 모치즈키가 비트코인을 개발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을 살펴보면 이론적 지능은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지만 오히려 코딩과 프로그래밍 자체는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난다는 의심도 테드 넬슨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16세에 프린스턴 입학, 23살에 대학원졸업, 33살에 교토대 정교수로 등극한 모치즈키 신이치는 천재이긴 하지만 본인 역시 넬슨의 주장을 극구 부인한 바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죽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가 죽었다'는 주장이다. 혹은 CIA와 같은 정부 기관이 사토시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워낙 베일에 쌓여 나온 가설일 뿐 어떠한 근거도 갖고 있질 못하므로 그 가능성에 대해선 배제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사토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한 사람이 아니라 4~6명의 개발자 집단의 이름이라고 추측하기에 이르렀다. 이 중에서 사토시는 대표 개발자일 뿐이라는 것. 그런데 논문의 경우 보통 대표자와 함께 협업자 역시 작게 표시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이 또한 근거가 충분하진 않다.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하나의 개발자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 대표자이지 협업자들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2011년 세계 최대 비트코인 포럼인 비트토크(bitcointalk)에 재미있는 주장이 올라왔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4개의 기업 연합체라는 것. 즉 삼성(Samsung), 도시바(Toshiba), 나카미치(Nakamichi), 모토로라(Motorola)가 그것이며 각각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연합체가 비트코인을 만든 이유도 앞으로 벌어질 통화 위기와 핵전쟁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삼성 SDS가 이더리움 기업 연합체(EEA)에 가입된 것은 일종의 자회사의 반발인 것 같다. 해당 글은 구체적 근거는 없는 상태이다.


결론


이제 여행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이제 결론을 내어보자. 앞서 언급한 후보를 종합해보면, 비트웹에서 보는 비트코인 창시자는 바로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근거 1. 현재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비트코인 논문의 코드나 주석은 완벽한 영국식 영어이다. 이 때문에 그가 영국인이거나 영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확대해보면 영국계 억양이나 문법을 가르치는 나라일 수도 있다. 크게 보면 영국, 호주, 일본이 그에 해당된다.


근거 2. 일본 이름이므로 꼭 일본사람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대한 금융시장과 공학 인프라를 보유한 일본을 앞세워 비트코인 창시자의 유명세나 추후 일어날 수 있을 조사를 숨기려는 목적으로 필명을 만들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등잔 및이 어둡다고, '일본 이름이니 일본사람'이라는 추측도 전혀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근거 3. 스위스 개발자 스티븐 토머스의 주장으로 사토시가 암호화폐 인터넷 포럼에 기고한 500건 이상의 문서를 분석해보니 미주대륙 거주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주로 문서의 게재 시간을 보니 일본시간대인 오후 2~8시 사이에 거의 기고하지 않은 사실을 밝혀내고 그리니치 표준시에서 5~6시간 뒤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시간대는 미국 동부를 포함, 북중미 서인도제도 등이 포함된다. 다만 비트웹 생각은 조금 더 가능성을 확장해보면 미국 중부나 대서양 건너편 영국까지 후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토시 나카모토가 완전한 밤형 인간일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위치상 분석한 내용은 그대로 일본이 될 수도 있겠다.


근거 4.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사용했던 'bitcoin.org'의 도메인이 2008년 8월 18일 등록되었을 당시 핀란드였다. 비교적 핀란드와 가까운 나라로 영국이 있다.



영국식 영어 발음을 쓰고 위치와 시간대상 영국 근처이거나 영국이 제2의 고향일 정도로 친밀해야하며 더군다나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명확한 근거로 소송까지 당한 점, 이것이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를 지목한 이유이다.


▲ 인정해줘서 고마워, 비트웹!


처음부터 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죄송하다. 뒷북인가보다. 그러나 만약 이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명확히 지목하는 분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업데이트해주기 바란다. 비트웹에서 다음 시간에 이 근거를 가지고 다시 관찰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다. 오늘 비트코인 창시자로의 여행은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독자 여러분 모두 즐거운 여행이었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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